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athraustos

벤야민의 프란츠 카프카 본문

독어독문학, 구텐 탁!

벤야민의 프란츠 카프카

③Ω 2020. 9. 5. 22:00

그런데 이처럼 ‘언 어 앞에서 vor der Sprache’에서 느끼는 수줍음은 벤야민의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1934)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참조할 때 다른 차원으 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수줍음은 이중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수줍음 은 인간의 내적인 반응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요구를 지니고 있다. 수줍음은 다 른 사람들 앞에서 느끼는 수줍음일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느끼는 수줍 음이기도 한 것이다.”138) (인용자 강조) 강조된 문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언어 Sprache’라는 말로 치환해 본다면, 언어-수줍음은 언어 앞에서 느끼는 수줍음뿐 만 아니라 ‘언어를 위한 수줍음 Scham für die Sprache’으로도 해석될 여지를 확보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에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왜소하 고 빈약한 자아가 스스로의 자신 없는 언어들 앞에서 느끼는 수줍음이 어떠한 연유로 돌연 그 언어를 ‘위한’, 그 언어를 ‘배려할 수 있는’ 수줍음으로 비약할 137) Ebd.: “Von Arnold Böcklin, seinem Sohn Carlo und Gottfried Keller erzählt man diese Geschichte: Sie saßen eines Tages wie des öftern im Wirtshaus. Ihr Stammtisch war durch die wortkarge, verschlossene Art seiner Zechgenossen seit langem berühmt. Auch diesmal saß die Gesellschaft schweigend beisammen. Da bemerkte, nach Ablauf einer langen Zeit, der junge Böcklin: »Heiß ist’s«, und nachdem eine Viertelstunde vergangen war, der ältere: »Und windstill.« Keller seinerseits wartete eine Weile; dann erhob er sich mit den Worten: »Unter Schwätzern will ich nicht trinken.« Die bäuerische Sprachscham, die hier von einem exzentrischen Witzwort getroffen wird, ist Walsers Sache.” 138) W. Benjamin: Franz Kafka. In: Gesammelte Schriften Bd. 2-2. Frankfurt a. M. 1991, S. 428: “Sie[Die Scham] hat aber ein doppeltes Gesicht. Die Scham, die eine intime Reaktion des Menschen ist, ist zugleich eine gesellschaftlich anspruchsvolle. Scham ist nicht nur Scham vor den andern, sondern kann auch Scham für sie sein.” - 52 - 수 있는가? 자신의 말을 자꾸만 지우게끔 하는 ‘언어 앞에서의 수줍음’은 다른 한편 당당하게 구획 짓는 세계에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무능력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무능력은 능력이기도 한데, 바로 이러한 무능력을 통해 관습화되고 규범화된 언어, 합리적인 의사소통의 언어, 다시 말해 법과 신화의 언어가 힘을 잃고, 오히려 변방으로 밀려난 언어를 위한 공간이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언어-수줍음이라는 좁은 문(門)을 통해 황무지화 된 언어가 들어설 자리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언어-수줍음의 이면에 존재하는 무능력의 능력은 벤야민의 언어를 참조한다면 ‘메시아적’139) 능력이라 명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벤야민은 발저 언어의 ‘수줍어하면서도 정교한 서투름 keusche, kunstvolle Ungeschick’이 다름 아닌 ‘광기Wahnsinn’의 영역에서 비롯된 것이라 고 진단한다.140) 하지만 그에 따르면 발저의 이야기는 ‘몰락하는 삶의 신경과민 아니라 [광기로부터] 소생 중인 삶의 순수하고도 생기발랄한 분위기 nicht die Nervenspannung des dekadenten, sondern die reine und rege Stimmung des genesenden Lebens’를 보여준다.141) 말하자면 발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 들은 광기를 겪었고, 바로 그러한 까닭에 병으로부터 회복 중에 있는 사람이 느 끼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다.142) 그리고 벤 야민은 바로 이러한 발저의 인물들이 ‘동화 Märchen’ 속 인물들과 접점―“순진 무구한 고매함 kindlichen Adel”143)―을 공유한다고 언급한다. 그런데 이후의 논 의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벤야민이 ‘신화와의 거대하고 세속적인 대결 과정 속 에서’ 모색되어야 할 형식으로 ‘동화’를 꼽았다는 사실이다. 동화는 일반적으로 현실적이지 않은 환상적인 이야기로 간주된다. 그런데 “모 든 동화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고향세계에 대한 꿈”144)이라는 노발리 스의 생각에 비추어보면, 동화는 단순히 공상적인 방식으로 소망을 충족시켜주 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현실의 경험지평 안에서는 결코 온전히 실현될 수 없 139) Vgl. W. Benjamin: Ü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 In: Gesammelte Schriften Bd. 1-2. Frankfurt a. M. 1991, S. 704. 140) Vgl. W. Benjamin: Robert Walser, S. 127 f. 141) Vgl. W. Benjamin: Robert Walser, S. 129. 142) Vgl. Ebd. 143) Ebd. 144) Novalis: Werke. Tagebücher und Briefe Friedrich von Hardenbergs. In: Hans-Joachim Mähl (Hg.): Das philosophisch-theoretische Werk. Bd. 2. Darmstadt 1999, S. 353: “Alle Märchen sind nur Träume von jener heimatlichen Welt, die überall und nirgends ist.” - 53 - 는 태고의 이상세계를 제공하는 이념으로까지 격상된다. 노발리스의 다음과 같 은 문장들은 절대적 창조의 원천이라는 동화의 이념을 잘 보여준다. “진정한 동 화 속에서는 모든 것이 놀라워야 한다. 즉 모든 것이 비밀로 가득 차 있어야 하 며, 서로 연관성을 갖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살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모 든 것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 동화의 세계는 전적으로 진리(역사)의 세계와 대치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까닭에 동화의 세계는 완전한 창조의 세 계인 카오스와 매우 흡사한 것이다.”145) 그런데 벤야민에게서 동화는 노발리스 의 동화 이념과 구별되는 독특한 개념으로 새롭게 의미부여 된다. 노발리스의 동화가 ‘근대 이전 Vormoderne’의 초월적인 세계를 지향한다면, 벤야민의 동화 는 오히려 근대 Modern 내부에서 탈마법화된 세계 entzauberte Welt와 관련된 다. 벤야민은 이야기꾼 Der Erzähler (1936)에서 동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 급한다. 좋은 조언이 잘 떠오르지 않았을 때는 동화는 언제나 조언을 해줄 줄 알았다. 어려운 처지에서 그리고 정작 조언이 필요했을 때 가장 가까이서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동화의 도움이었다. 이러한 경우의 어려움은 신화가 만들어낸 어려움이다. 동화는, 신화가 우리들 가슴에 가져다준 악몽을 떨쳐 버리기 위해 인류가 마 련한 가장 오래된 조치방안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동화는 바보의 인물을 통하 여 어떻게 인류가 신화에 대해 바보처럼 행동하였는가를 보여 주고, 막내동생의 모습을 통해서는 인류가 신화의 원초적 시간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짐에 따라 어 떻게 그들이 가능성이 증대하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며, 두려움을 배우기 위해 떠났던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는 우리들이 두려움을 갖는 사물들이 투시․파 악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현명한 체하는 영리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는 신화가 제기하는 의문이 마치 스핑크스의 물음처럼 단순한 것임 을 보여주며, 그리고 동화 속의 어린이를 도우는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서는 자연 은 신화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들하고도 함께 어울리기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14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