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hraustos
신화의 언어와 공동체의 내밀하고 근원적인 이야기 본문
이처럼 신화는 인간의 단순한 호기심을 채워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어떤 세계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에 응 답한다. 신화는 결코 한 개인의 신화가 아니라 공동체의 내밀하고 근원적인 이야기, 즉 ‘공동체의 신화’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어 가지는 언어는 “교환 들을 위한 언어가 더 이상 아니며, 그들의 연합을 위한 언어―토대와 서약의 신 성한 언어―”74)가 된다. 특히 신화의 언어에 관한 낭시 Jean-Luc Nancy의 언 급은 낭만주의자들의 신비주의적 언어관을 선회하면서, 신화와 언어 간의 기묘 한 관계를 환기시킨다. 여기에서 낭만주의자들이 공유한 신비주의적 언어관이란 언어를 의사전달을 위한 도구 이상의 것으로 간주하고, 합리적 기호와 구분되는 본래적 언어에 마술적 힘이 내재한다고 보는 입장을 가리킨다. 낭시에 따르면 신화는 외부에 있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의 언어 ‘안에서’ 어떤 공동체를 호출해낸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신화를 듣는 와중에 어쩌 면 아주 순간적으로나마 신화의 언어가 빚어내는 어떤 공동체에 합류하게 될는 지도 모른다. 따라서 신화는 아무 말로나 만들어지지 않으며, 아무 언어나 말하지 않는다. 신화 는 명백히 나타나는 사물들의 언어이자 말이며, 그 사물들에 대한 소통이다. 신화 는 사물들의 외현(外現)도, 외관도 말하지 않으며, 신화 속에서 사물들의 리듬이 74) Jean-Luc Nancy: The inoperative community. Minneapolis 1991, p. 44: “It is no longer the language of their exchanges, but of their reunion―the sacred language of a foundation and an oath.” (국역본 장-뤽 낭시: 무위의 공동체. 박준상 옮김. 인간사랑 2010, 104면.) - 30 - 말하고 사물들의 음악이 울린다. “신화와 슈프라흐게장 Sprachgesang(언어의 노 래)은 요컨대 하나의 같은 것이다.” 신화는 정확히 한 세계를 솟아나게 하고, 한 언어를 도래하게 하며, 한 언어의 도래 속에서 한 세계를 솟아나게 하는 주문(呪 文)이다.75) 다시 신화에 관한 담화 로 돌아오면 이 글의 화자 역시 위와 유사한 맥락에 서 ‘새로운 신화’를 “무한한 시 das unendliche Gedicht”76) 혹은 “신비스러운 시 dieses mystische Gedicht”77)라고 명명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 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신화는 어 떻게 만들어지는가? 새로운 신화는 과연 무엇으로부터 탄생하는가? 이에 대해 루도비코는 고대의 신화가 감각적인 세계에서 기원한다면, “새로운 신화는 이와 반대로 정신의 가장 깊은 심연으로부터 생겨나야 한다”78)고 언급한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초기 낭만주의의 새로운 신화는 체계기획 에서 강조된 관념론적 ‘이성의 신화’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뒤이어 화자는 이러한 의혹을 다음과 같은 말로 불식한다. “관념론은 단지 새로운 신화의 한 예일 뿐 아니라 간접적인 방식에서의 원천에 불과하다.”79) 오히려 신화에 관한 담화 에 따르면 새로운 신화는 “카오스 Chaos”80)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카오스 란 계몽주의 시기에 서로 이질적인 요소로 분리되어 있던 이성과 상상력을 종 합하는 힘을 가리킨다. 또한 카오스적인 것이란 단순히 모든 것이 뒤죽박죽으로 혼재한 상태라기보다, 서로 대립되고 모순적인 요소들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룬 75) Jean-Luc Nancy: The inoperative community, p. 50: “Thus myth is not composed of just any speech, and it does not speak just any language. It is the speech and the language of the very things that manifest themselves, it is the communication of these things: it does not speak of the appearance or the aspect of things; rather, in myth, their rhythm speaks and their music sounds. It has been written that “myth and Sprachgesang (the song of language) are fundamentally one and the same thing.” Myth is very precisely the incantation that gives rise to a world and brings forth a language, that gives rise to a world in the advent of a language.” (국역본 장-뤽 낭시: 무위의 공동체, 118면.) 76) Friedrich Schlegel: Rede über die Mythologie. In: a. a. O., S. 497. 77) Ebd. 78) Ebd.: “Die neue Mythologie muß im Gegenteil aus der tiefsten Tiefe des Geistes herausgebildet werden.” 79) Friedrich Schlegel: Rede über die Mythologie. In: a. a. O., S. 499: “[…] und der Idealismus also nicht bloß in seiner Entstehungsart ein Beispiel für die neue Mythologie, sondern selbst auf indirekte Art Quelle derselben werden.” 80) Ebd. - 31 - 상태를 일컫는다. 이렇듯 초기 낭만주의의 새로운 신화는 총체성과 조화의 정신 을 강조하는 독일 관념론 철학에 기반을 두면서도, 이성의 렌즈로 포착할 수 없 는 삶의 다양한 내용들을 상상력에서 길어 올린 ‘환상 Phantasie’을 통해 풍부하 게 서술해내고자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초기 낭만주의의 새로운 신화란 매번 새롭게 창조되는 문학에 대한 알레고리이자, 실천적 측면에서는 ‘심미적 혁명’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 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독창적 학설이나 어떤 ‘주의(主義)’로서가 아니라, 엄 연한 현실로 존재했던 초기 낭만주의의 역동성과 창조적인 힘을 확인할 수 있 다. 그것은 어떤 형식적 준거나 권력에 포섭되지 않으면서, ‘문학’을, ‘삶’을, ‘무 한한 변화’를 긍정하는 강력한 힘이다. 그런데 새로운 신화 이념은 실제 역사 속에서 본래의 혁명적 취지와 다르게 왜곡․변질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그 예로 멀게는 나폴레옹 몰락 후 낭만주의자들이 보수․반동적인 메테르니히 체제의 지지자로 대거 전향한 경우―이는 초기 낭만주의와 구분되어 ‘후기 낭만주의’ 또는 ‘정치적 낭만주의’라고도 지칭된다―를 들 수 있고, 20세기에 와서는 개인 의 절대적 자유를 보장하는 공동체, 즉 문화적 보편국가에 대한 낭만주의의 열 망이 배타적 민족공동체나 전체주의에 대한 요구로 퇴색된 바를 들 수 있다. 이 와 관련하여 이사야 벌린은 파시즘 역시 ‘낭만주의의 후예 inheritor of romanticism’라고 일갈한 바 있다. “파시즘이 낭만주의에 무언가 빚을 졌다면 그 이유는, 또다시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예측할 수 없는 의지, 조직하고 예측 하고 합리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는 의지라는 개념 때 문”81)이며 “파시즘에 있어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병적인 흥분 상태에 빠진 자기주장과 무한한 의지를 제한하는 기성제도의 허무주의적 파괴뿐이고, 우월한 인간은 그의 의지가 더 강한 까닭에 그보다 열등한 인간을 밟고 일어서 니, 이것은 낭만주의 운동의 직접적인 유산이며, 이 유산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82)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이후 낭만주의는 81) Isaiah Berlin: The roots of romanticism. p. 145: “The reason why Fascism owes something to romanticism is, again, because of the notion of the unpredictable will either of a man or of a group, which forges forward in some fashion that is impossible to organise, impossible to predict, impossible to rationalise.” (국역본 이사야 벌린: 낭만 주의의 뿌리, 233면.) 82) Ebd.: “The hysterical self-assertion and the nihilistic destruction of existing institutions because they confine the unlimited will, which is the only thing which counts for human beings; the superior person who crushes the inferior because his will is stronger; these are a direct inheritance - in an extremely distorted and garbled form, no doubt, but still an inheritance - from the romantic movement; and this - 32 - 현실과 정치에 무관심한 예술가들의 은둔처로, 기껏해야 민족주의로 귀의한 부 르주아들의 정치적 안식처로 간주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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